2015년 11월 13일 금요일

사방지와 임성구지 : <조선왕조실록> 속 남녀한몸(Intersex in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I. 개관(Overview)

1997년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선 왕조에 일어난 일을 날짜별로 기록한 이 위대한 책에는 다소 특이한 사건 또한 남아 있다.

간성(間性), 남녀추니, 남녀한몸, 반음양(半陰陽), 양성구유(兩性具有), 어지자지, 인터섹스(intersex), 암수한몸(雌雄同體)과 헤르마프로디테(hermaphrodite)[1], 일본어 후타나리(二形, ふたなり) 등등.

양의(兩儀), 곧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모두 가진 인간이 우리 역사 속에 존재했다. 그것도 두 명이나.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잠시 살펴보자.

There are two intersex people in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which is registered UNESCO Memory of the World in 1997. Let's see their stories reflected the history.


II. 사방지와 임성구지(Bangji Sa and Seongguji Im)

1. 간단한 비교(Simple comparison Sa with Im)
간단한 비교

사방지 Bangji Sa 
임성구지 Seongguji Im 
시기
Time
1462
1548
성별
sex
여장 남자
MTF Crossdresser
간성
intersex
죄목
crime
간통
adultery
중혼
bigamy
반응
reaction
스캔들
scandal
해프닝
happening
처벌
punishment
유배, 관노(官奴)
exile, enslavement
격리
isolation
ohuism.blogspot.com

첫 번째 주인공은 1462년 국문된 사방지(舍方知)이다.

그는 여장 남자였고, 양반집 과부와 10년간 간통했다. 그는 명백한 스캔들을 일으켰으나 혈연으로 얽혀 있던 훈구세력이 그를 변호했다. 사방지는 신창현(新昌縣)에 유배되었으며 관노(官奴: 관아에 소속된 노비)가 되었다.

두 번째 주인공은 1548년에 외진 곳에 보내진 임성구지(林性仇之)이다.

그는 시집도 갔고 장가도 들었다. 즉 중혼(重婚)했다. 그는 정황상 남자와 여자의 성기를 모두 갖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명종은 임성구지를 물괴(物怪: 괴상한 물건)로 취급하여 외진 곳에 격리했다. 다만 그를 죽이진 않았다.


2. 사방지 스캔들 : 기득권의 같잖은 변호
Sa's Scandal: the Establishment's foolish defense

1) 천민 사내가 여장하고 양반 여인과 10년간 간통했으나 세조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다.

사방지의 스캔들은 임성구지의 해프닝에 비하면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다. 당장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에서 두 사람의 이름을 검색해 보면 전자는 세조 때 25건, 후자는 명종 때 2건뿐이다.

주목할 것은 최종 결정권자인 왕, 세조(재위 1455~1468)의 태도이다. 천민이 양반집 과부와 사통했다. 신분제를 뒤흔드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세조는 상당히 유한 처분을 내렸다.

이 사건의 초기 진행 과정을 메신저 대화 형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사방지 스캔들의 초기 진행 과정


세조의 흐지부지한 처분에 유학 정신으로 똘똘 무장한 신하들이 반발한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신하들이 여러 번 국문(鞠問: 중죄인을 신문하는 것)을 청해도 세조는 꿈쩍하지 않았다.

사방지의 처분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이순지(李純之, 1406~1465)가 사망한 후였다. 그마저도 죽인 것은 아니었고, 죄인을 신창현(新昌縣: 충남 아산)에 유배하고 관 소속 노비(官奴)로 삼았다.


2) 혈연으로 결속된 훈구세력이 엄연한 사내를 인간이 아니라고 낙인찍다.

그렇다면 왜 세조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는가? 속된 말로 하자면, "쪽팔려서."였다. 이렇게 부끄러운 일이 사방팔방에 알려지면 얼굴 들기 힘들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세조는 조카 단종(재위 1452~1455)을 계유정난(癸酉靖難, 1453)으로 끌어내고 왕위에 올랐다. 그는 정통성이 약했고 신하들의 조력이 필요했다.

그는 자신을 지지한 공신들과 혈연을 맺었다. 이로 인해 거대한 세력이 탄생했다. 그 이름하여 훈구파(勳舊派). 곧 대대로 공이 있는 집안(勳舊)이었다.


위에 간략한 관계도가 있다. 세 개의 가문(양평 이씨, 하동 정씨, 왕실)이 혼인으로 엮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조를 기준으로 얘기하자면, '사돈의 사돈이 불륜을 저질렀다.'가 성립한다.

이러한 사실이 동네방네 알려지면 그의 사돈인 정인지 체면이 어찌 되겠는가[2]. 하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중죄인을 가만히 둘 순 없다.

고민하던 세조는 묘책을 낸다. (성기가 좀 이상해서 그렇지) 엄연한 사내를 인간이 아니라고 낙인찍은 것이다.

"재판장님, 피고인은 오랜 세월 정신 질환을 앓았습니다."
"재판장님, 피고인은 사건 당시 지나친 음주로 충동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심신 미약자를 대상으로 한 감형. 이것은 기본적으로 법이 인간을 합리적인 존재로 전제하고 있기에 적용되는 것이다.

전근대 사회의 왕은 국가 원수이자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으뜸이었다. 세조는 자신의 지위를 십분 활용해 피고인을 '병자(病者)'로 칭했다.

사방지는 음도 양도 아닌 존재가 됐다. 즉, 인류(人類)가 아니게 됐다. 역설적으로, 덕분에 피고인은 합리적인 여타 인간보다 관대한 처분을 받게 될 명분이 생겼다.



3. 임성구지 해프닝: 외면받은 인간성
Im's Happening: ostracized humanity

1) 남자야? 여자야? 해괴한 임성구지의 등장.

1584년, 함경도 감사(監司: 지금의 도지사)가 명종에게 보고서를 올렸다. 남성과 양성의 성질이 한 몸에 나타난 임성구지라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방지와 임성구지는 같은 듯 다르다. 사방지는 (초기에) 약간 애매하지만 남자로 인식됐다. 그러나 임성구지는 남자 혹은 여자로 단정할 수 없는 신체를 갖고 있었다. 그는 시집도 갔고, 장가도 들었다. 함경도 감사는 오리무중에 빠졌다.

2) 사방지의 예에 따라 사람들 사이에 섞이지 못하는 처분을 받다.

80여 년이 흘렀다. 그동안 왕이 여섯 번이나 바뀌었다. 그러나 사방지 스캔들은 워낙 충격적이었기에 사람들의 뇌리에 남았다[3]. 명종은 사방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세조가 그를 처분했던 예를 따랐다.

왕은 임성구지를 괴물 취급하고, 외딴곳에 격리했다. 혹여나 그가 정상적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도록. 또 사형을 청하는 신하에게 인간이 아닌 것에 구태여 엄격한 제도를 들이댈 수 없다며 임성구지를 살려 두었다.

3) 인세에 속하고 싶었던 인간의 이야기가 한낱 괴물 해프닝이 되다.

필자는 임성구지를 동정한다. 괴이한 물건(物怪: 괴물과 물괴는 한자가 같음) 취급을 받은 그가 대단히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서다.

그는 성염색체 이상으로 인해 선천적 기형아로 출생했으나 숨지 않았다. 그는 인간이 사는 세상을 누비며 인도(人道)를 양용(兩用), 곧 남자와 여자의 삶을 모두 누렸다.

함경 감사의 보고서(狀啓)에는 그의 심정이 한 글자도 적혀 있지 않다. 그가 어떠한 생각을 했는지 알 방법이 없다.

조선 조정은 지극히 단조로운 행정으로 그를 다루었다. 그의 구구절절한 사연은 '괴물'이라는 단 한마디로 정의됐다. 임성구지는 그토록 원하던 세상과 격리되었다.

꽤 오랫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사방지와 달리 그는 깔끔히 잊혔다. 그는 단순한 우발 사건(happening)에 불과했으니까. 조선왕조실록에 남은 그의 기록은 이것이 끝이다. 이후의 이야기는 아무도 모른다.


III. 결론(Conclusion)


2015년 현재를 사는 우리는 '인간은 존엄하다.'는 명제가 참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바로 그 명제를 바탕으로 우리는 기본권(基本權)으로서 인권(人權)에 접근한다.

사방지와 임성구지의 사례를 보며, 인권 감수성이 높은 사람은 속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들이 선천적이고 생득적인 신체로 차별받았기 때문이다.

우리 인류는 오랜 세월 인간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특정한 조건에 부합하는 자만을 인간이라 칭하며 대우했다. 아이, 여자, 장애인은 말할 것도 없다. 인간은 때때로 자신이 속한 집단의 외부에 있는 외국인, 특정 인종 등을 동등하게 대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인간은 남자 또는 여자의 성별만을 가진다고 정의됐다. 그러나 그것은 틀렸다. 위의 기록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성별이 모호한 인간은 오래전부터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오랫동안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한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포괄적인 표현 말이다. 꼭 한 가지가 아니어도 괜찮다. 다양할수록 좋다. 더욱 많은 존재가 인간이라는 범위에 들어올 테니…….

인간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인권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A kind of definitions of human will become the first step for human r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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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암수한몸(雌雄同體)과 헤르마프로디테(hermaphrodite): 주의. 이 표현은 인간을 묘사할 때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2] 사실 세조는 이순지도 보호하려 애썼다. 그러나 불륜한 여자의 아버지로서, 그는 가장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 일은 이순지의 졸기(卒記: 누군가 죽었을 때, 사관이 그의 인생을 유교적 가치관에 따라 평가한 기록)에 남을 정도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3] 1500년, 사건이 발생한 지 근 40년이 되었을 무렵, 연산군은 불륜을 저지른 이씨 부인의 손자를 대궐에 들이지 말라고 명령했다.


바깥 고리(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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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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