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일 일요일

궁중 연례악 <왕조의 꿈, 태평서곡> 감상("Music of Peace & Dream of the Dynasty" review)



* 공연 시간 : 70분
* 일시: 2015년 10월 30일 금요일 오후 3시, 10월 31일 토요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
* 장소: 창경궁 명정전
* 주최: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
* 주관: 국립국악원, 문화재청 창경궁,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국악방송


I. 개관(Overview)

2015년 10월 30일 금요일 오후 3시. 창경궁 명정전에서 국립국악원이 <왕조의 꿈, 태평서곡>을 공연하였다. 이것은 필자가 관람한 첫 번째 궁중 연례악이다.

3:00(P.M.), Friday, October 30, 2015. In Munjeongjeon of Changgyeonggung, National Gugak Center have performed "Music of Peace & Dream of the Dynasty". It was my first experience in watching royal court banquet music and dance.


II. 좋았던 점 4가지(4 Good Points)

1. 공연장 : '진짜' 고궁 한복판인 창경궁 명정전에서 공연이 열리다.
Venue : REAL palace's main hall, Munjeongjeon of Changgyeonggung

1) 1795년, 수원 화성
십간(十干)[1] 십이지(十二支)[2]를 조합하면 총 60개의 간지(干支)가 나온다. 환갑(還甲)은 60년이 지나 자기가 태어난 해의 간지가 돌아왔다는 의미이다. 평균 수명이 짧았던 전근대, 60년이나 생존했다는 건 커다란 경사였다.

1795년, 정조(재위 1776~1800, 생몰 1752~1800)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생몰 1735~1815)와 아버지 사도세자(생몰 1735~1762)의 회갑을 맞아 수원 화성에서 성대한 환갑연을 열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제반 사항을 빠짐없이 기록하여 보고서로 묶었다.

2) 원행을묘정리의궤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는 이렇게 탄생했다. 긴 한자어라 다소 어렵다만 풀어 쓰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원행(園行): 정조가 수원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에 들렀다.
을묘(乙卯): 을묘년, 즉 1795년에.
정리(整理): 그때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였다.
의궤(儀軌): 의례 보고서로써.

이 귀중한 기록은 22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 앞에 과거를 생생하게 보여 주었다.

3) 2015년, 창경궁 명정전

그리고 시간은 흘러 2015년, 창경궁의 정전(正殿)[3]인 명정전(明政殿)에서 공연이 열렸다. 세트가 아니다. 진짜 고궁에서 있었던 일이다.

타임머신이 개발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공연장의 분위기로 최대한 유사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실제 고궁에서 공연이 열린 만큼, 이 공연은 현장감과 몰입감이 뛰어났다. 고관대작이 된 양 고궁 한복판에서 편안히 공연을 감상한 것은 크나큰 호사였다.

또한 푸른 하늘, 남색 기와, 울긋불긋한 산림, 회색의 단단한 돌 등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이 땅에 대대로 내려오는 자연과 벗하며 공연을 감상하니 풍류가 있었다.


2. 궁중 연례악 : 유교적 가치를 반영하다.
A royal court banquet music and dance : reflection of Korean Confucianism



1) 유교적 상하관계가 드러난 예식
궁중 연례악(宮中宴禮樂)이란 궁궐에서 연회 때 예식용으로 연주된 곡을 말한다. 예(禮)를 중시했던 유학 국가답게, 조선은 정교하게 의례를 정비했다.

이 공연은 "초엄-중엄-삼엄-배례-진작-거작-산호-제1작-제2작-제3작-제4작-제5작-예필"의 절차로 진행되었다.

연회 참석자가 입장하는 순서로 감이 오지 않는다면 잔을 올리는 순서에 주목해 보자.

제1잔(정조), 제2잔(내명부 대표), 제3잔(종친 대표), 제4잔(외명부 대표), 제5잔(의빈 대표). 철저하게 위에서부터 아래로 자궁에게 축하를 건넸다는 걸 알 수 있다.

2) 유교적 미덕이 반영된 음악과 춤
이 공연은 시각적으로 꽤 볼거리가 있다. 그러나 요란하지는 않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 공연의 음악과 춤은 정갈하다.

본래 궁중 연례악을 즐긴 사람들은 시정잡배가 아니었다. 성리학적 질서의 최상위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고로 이 공연은 관중의 고상한 취향을 고려했다. 노란색과 빨간색으로 옷을 맞춰 입은 무용수들은 사뿐사뿐 우아하게 움직인다.

여유가 있는 자들에게 헌상된 느림의 미학. 과연 적절하지 않은가.


3. 친절한 공연 : 연기와 대사로 관객의 이해를 돕다.
A thoughtful performance : actings and dialogues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본으로 했지만, 이 공연은 그것을 그대로 재현하지는 않았다. 배경 지식이 별로 없는 일반인 관중이라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세심히 배려했다.

1) 연기
혜경궁 홍씨에 박정자(1942~), 정조에 이민우(1976~)를 캐스팅했다. 야외 공연인 만큼 음향이 조금 불안했는데, 관록이 있는 배우들이 또박또박 발음해 주어 대사를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박정자는 한 많은 60년을 산 자궁(慈宮)의 기쁨과 자애를, 이민우는 지존의 위엄과 효심을 훌륭히 연기했다.

2) 대사
이 공연은 대사를 통해 배경 지식을 친절하게 전달하고 있다. 알면 알수록 재미있긴 하지만, 정황을 다 몰라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각본가의 균형감이 엿보였다.

가령 정조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환갑을 맞으셨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가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남길 정도로 이 일에 열정적이었던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개인적인 효심. 자식이 부모님의 회갑연을 챙기는 것은 당연한 도리였다.

둘째는 뒤주에 갇혀 죽은 아버지를 존숭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권위를 드높이는 것. 성리학적 질서로 운영되던 조선에서, '정통성'이 얼마나 큰 힘을 가졌을지 생각해 보라.

한편 혜경궁 홍씨는 '이러한 일들이 있었으니 글로 남기고 싶다.'고 말한다.

실제로 혜경궁 홍씨는 원행을 다녀온 후에 글을 썼다. 그리고 그것은 현전한다. 그녀가 《한중록(閑中錄)》의 저자임을 떠올리자면 역사적으로 적절한 대사였다.


4. 뛰어난 전광판 활용 : 시각적 효과를 더하고 실황을 중계하다.
The best use of electronic displays : visual effects and broadcasting

개인적으로 필자가 힘주어 칭찬하고 싶은 것은 이 부분이다. 무대 좌우, 정중앙에 하나. 총 세 개의 전광판을 배치하였는데 매우 적절하게 사용하였다.

1) 정중앙 전광판 : 시각적 효과
조선의 왕이 있는 곳에는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만약 일월오봉도를 평범한 종이로 제작했더라면, 멀리 앉은 사람은 그 존재를 잘 분간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증에 충실한 선택이었으며, 시각적으로도 훌륭했다. 이 연회의 주인공인 자전에게 시선이 집중되었으니까.

정중앙 전광판은 때때로 화상을 바꾸었다. 한창 연회가 무르익었을 때는 꽃이 어우러진 이미지가 떴다.

멀리 있어서 그 무늬는 자세히 살펴보지 못하였으나, 마치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을 떠올리게 했다. 자전의 장수를 기원하는 상징물들이 사용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2) 좌우 전광판: 실황 중계
필자는 별로 좋은 자리에 앉지 않았다. 그러나 좌우에 달린 커다란 전광판이 공연장을 잘 비추어 관람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특히 좋았던 것은 연회 순서에 맞추어 친절하게 한글과 영문 자막이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덕분에 각각 춤과 음악이 어떠한 의미를 지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III. 아쉬웠던 점 2가지(2 Bad Points)

1. 야외 공연 : 추운 날씨 속에서 날카로운 바람에 고생하다.
An outdoor performance : cold weather, sharp wind

하필 이날 서울 날씨가 궂었다. 볕은 좋았으나 바람이 칼처럼 살을 스쳤다. 추워서 자리를 떠나는 관람객도 드물지 않게 있었다.

특히 무대 쪽에 강풍이 불었던 듯했다. 배우들의 마이크에 바람이 섞였고, 옷이 매섭게 펄럭거렸다.

2. 전통 예술 : 젊은이에게는 아직 생소하다.
Traditional arts : unfamiliar to the youth.

국악 공연답게, 중장년 관람객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눈대중으로 20대 이하 관람객은 채 10%도 되지 않을 듯했다.

젊은이들에게 국악은 아직 생소하다. 빠르고 격정적인 춤과 음악에 익숙한 젊은이들에게 70분간의 국악 공연은 어쩌면 고리타분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것을 보존하고 발전하고자 한다면, 앞으로 이 젊은이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방법을 모색해 보아야 할 것이다.


IV. 결론(Conclusion) : 3.5/5.0

고아하다. 그러나 아직 친숙하지 않다.
Classical and elegant. But unfamiliar y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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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십간(十干):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2] 십이지(十二支):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3] 정전(正殿): 왕이 신하들과 함께 조회(朝會)하는 전각. 실제로 명정전 앞에는 자그마한 품계석이 있으며, 신하들은 직급에 따라 줄을 섰다.


바깥 고리(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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